'Record/Think'에 해당되는 글 24

  1. 2011/07/08 한국 전자출판
  2. 2010/05/04 사람의 모습을 그리다.
  3. 2009/03/09 흥미를 잃다 (4)
  4. 2008/01/16 의문_080116
  5. 2007/11/18 코멘트
  6. 2007/10/18 A Vision of Students Today
  7. 2007/10/02 memo 07.10.02
  8. 2007/09/20 평가?
  9. 2007/06/12 혼란스러움 (6)
  10. 2007/04/28 로스트로포비치 타계.
  11. 2007/04/07 different point of View / About Genius
  12. 2007/04/02 요즘 작업
  13. 2007/02/20 주석.
  14. 2007/01/30 무슨생각?
  15. 2006/12/30 잡생각

한국 전자출판

모바일 타블렛의 잇다른 출시에 따라 국내에서도 eBook의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사실상 컨텐츠야 각 출판사나 작가들이 원본 텍스트를 가지고 있으니 새로운 제작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이제 원고지에 팬으로 글을 쓰는 작가들은 소수이지 않은가...

아직까지 국내에 eBook이 크게 활성화 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컨텐츠의 부족때문이다. 음반이나 영화도 그러하지만 출판시장도 계속되는 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베스트 셀러를 배제하면 수익이 그리 크지도 않으며 때문에 학술서들은 금새 절판되어 구할 수 없게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째서 이런 컨텐츠의 부족이 생겨나게 된것일까? 대형 서점에 가득한 책들은 뭐란 말인가?


새로운 유통구조

eBook은 사실상 새로운 유통구조의 등장이다. 여태 출판사에서는 업체명 그대로 출판의 기능만을 해왔다. 무슨말인고 하니, 책의 제작은 출판사에서 유통 및 판매는 서점에서 했다는 말이다. 때문에 서점을 통하는 중간 유통구조가 있는 것이다. 출판사가 거대해서 유통과 판매까지 하는 SPA형 출판서점은 여지껏 없다. 서적업계는 의류업계와 거의 모든 면에서 달라 그러한 거대 기업이 등장하기 어렵다. 간략하게는 컨텐츠 산업과 실물 산업의 차이정도로 보면 되겠다.

새로운 유통구조는 필히 기존 유통구조를 붕괴시키기 마련이다. 물론 새로운 유통구조가 기존의 그것보다 효율이 떨어지고 구시대적이라면 다르겠지만 대게 유통구조자체가 바뀌는 현상은 기술의 발전에 얹혀가는고로 훨씬 현대적이고 저렴해지며 수익성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출판의 유통구조는 언급한 대로 출판사에서 제책, 서점에서 유통 및 판매의 구조다. 인터넷거래가 활성화 되면서 대형 온라인 서점이 등장한 것이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의 등장은 인터넷 판매업에 거대한 태풍을 몰아왔고 역시나 국내에도 이러한 온라인서점이 들어섰다. 덕분에 중소규모의 서점은 유통비용의 절감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고 곧 많은 동네 서점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실제로 서울은 문제집과 잡지 이외의 책을 판매하는 소규모 서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eBook은 이런 중간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극히 적으며 출판사가 직접 유통과 판매를 담당할 수 있다. 서점의 위기다. 하지만 서점도 나름대로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 출판사는 다양하고 많다. 이 출판사들이 개개별의 온라인 서점을 운영하게 되면 소비자 입장으로는 상당히 까다롭고 귀찮아지고 이는 매출의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출판사는 기존의 온라인 서점에게 eBook유통 구조상에서도 여전히 서점의 역할을 맡도록 한다.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사례를 보자, 아마존은 기존에 온라인서점의 형태로 시작했다. 지금은 각종 물건들과 음반, eBook까지 판매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마존이 큰 경쟁상대없이 온라인 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점 중 하나는 eBook리더의 보급이 크다. 아마존은 자체적으로 Nuke라는 eBook리더를 매우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eBook은 아무런 매게체없이 판매되는 것이 아닌 디지털 컨텐츠를 열람하는 디바이스가 있어야 하기에 이 디바이스의 보급은 컨텐츠의 판매와 직결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훌륭한 사례가 애플의 아이폰과 앱스토어다.

국내 출판사를 보자. 리더는 다소간 높고 그에 비해 컨텐츠는 적다. 아마존처럼 강력한 하나의 서점이 독점적 형태를 취하는 것이 아닌 몇개의 서점이 독과점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소비자들이 분산된다. 게다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등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외국의 시장들이 국내에 들어오게 된다.

국내의 온라인 서점은 eBook의 활성화에 큰 관심이 없다. 생리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다. 단기적으로 적지 않은 투자가 발생해야되고 그에 비해 현재 종이책의 판매 수익이 꽤나 짭잘하다. 독과점 형태의 시장에서 각 업체들은 무언의 담합으로 비슷한 가격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때문에 어느 기업에서 새로운 투자를 하려고 하면 견제가 들어오거나 스스로 자멸할 위험이 있다. KT에서 영업손실을 감수하고 아이폰을 독점적으로 들여왔으나 수익에 비해 손해도 컸고 오히려 뒤를 따르는 형태의 SKT는 스마트폰 초기 선점에는 다소 밀렸으나 현재는 뒤질것 없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 대표적 예다. 마치 F1의 핏스탑과 비슷하다.#1


컨텐츠 제작

출판사의 입장에서도 eBook을 출간하는데 별다른 잇점이 없다. eBook은 판매량도 적지만 아직까지 많은 서점들(알라딘, Yes24, 인터파크, 북큐브, 리디북스 등등)에 유통해야하고 전자출판의 경우 저작권 계약도 새로이 해야한다. 게다가 현재 종이책판매 수익이 큰데, 그 원인인즉 고급지류와 양장본들 덕분이다. 국내는 해외와 다르게 페이퍼백 서적들이 없다. 종이도 재생지 같은 저렴한 종이들이 아닌 빳빳하고 새하얀 고급종이를 사용한다. 제작단가도 올라가고 판매단가도 올라간다. 디지털 컨텐츠에는 이런 장난을 칠 수 없다. 덕분에 독자들은 아무리 비싸도 페이퍼백이 없으므로 선택사항이 없다.

사족이지만 양장들은 무겁기도 하고 커버가 휘지 않아 보관에는 좋지만 책을 보기에는 불편하다.

판매량 자체가 크지 않으므로 eBook은 주로 판타지 소설같은 원가(컨텐츠, 저작권료)가 저렴한 책들이 대부분이고 아무리 뒤적여도 읽을만한 책이 손에 꼽을 정도다.

게다가 아직까지 규격이 생소하고 책들마다 서식이 엉망인 것도 판매량 저조에 한몫한다. 어떤 책들은 줄간격이 너무 적고 어떤 책은 글씨와 삽화가 겹치고.. 제작이 어렵지 않음에도 신경쓰지 않고 있는 분명한 증거다. 규격에 맞추어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제작되어지기만을 바란다.


아마존

아마존의 통계로 2010년에는 종이책보다 eBook이 더 많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미국시장의 다양하고 풍부한 컨텐츠가 부럽기만 하다. iBooks에서도 고전문학, 고전인문학들은 무료로 제공되며 양도 방대하다. 러시아문학은 키릴어로 제공되기도 한다. 국내에는 이런 서적들은 절판된 경우도 상당하며 다수의 오래된 서적들이 교정된 새로운 판본이 나오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벤야민의 <문예이론>을 상당히 오래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벌써 영역을 다시 넓혀 얼마전에는 안드로이드 앱스토어를 열었다. 매일 유료앱을 하나씩 무료로 거기에 독점적 앱들까지 갖추고 있다.


아쉬움

장거리를 이동하게 되면 책같이 무거운 물건들을 들고다니기 힘들다. 특히나 거주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거추장 스러울 수 밖에 없다. 내가 근래 종이책 구입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eBook은 단말에 수십수백권씩 넣어다닐 수 있고 북마크의 검색도 자유로워 내가 읽은 책을 다시 꺼내어 보기도, 메모를 보기도, 입맛대로 골라보기도 좋다. 종이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불필요하게 나무를 베어내지 않아도 된다. 절판도 없다.

하루 빨리 시장이 확대되고 많은 서적들이 유통되길 기대하지만 현재로서는 기업들간의 이해관계와 단기적 이윤추구 현상덕분에 지금처럼 온라인 서점에서 추천하는 eBook이 한달간 그대로인 상태는 생각보다 길어질것만 같아 아쉽다.

국내에도 양질의 다양한 서적들이 eBook으로 출간되길 여전히 기대해본다. 읽기형태가 변하는 것은 문화 전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
#1. 핏스탑을 일찍 가져가면 새로운 타이어로 빠른 랩타임을 가질 수 있지만 느린머신의 뒤로 들어오게되면 트래픽때문에 손실을 본다. 때문에 보통 2위일때 먼저 핏스탑을 가져가서 1위보다 빠른 랩타임으로 돌며 1위가 핏스탑을 할때 자신의 뒤로 들어오길 노리며 1위는 자신과 차이가 크지 않은 2위나 3위가 핏스탑을 하면 1~2랩내에 핏스탑을 가져가는 것이 정석이다. 의도하지 않은 핏스탑을 하게될 수도 있으며 자칫 옐로플래그가 뜨거나하면 위험하게 될 수도 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Trackback Comment

사람의 모습을 그리다.

공개된 블로그에 한참 글을 잘 쓰다가 유입경로/키워드에 친구들 이름이 있는 것을보고 개인적 포스트들을 비공개로하고 검색을 막고 회원제로 홈페이지에다가 편하게 아무 글이나 쓰곤 했었다. 블로그는 사생활에 관련된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사실 사생활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특성이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도록 글을 쓰려고 했었다. 그런데 글 쓰는 주체가 희미해지니 글 자체가 희미해져버리더라. 어떤 개인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는 글쓰기를 하려면 '에세이'가 아닌 소설을 써야 했다. 글이란게 사람의 체험과 그 사람이 사고한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라서 절대 특정 인물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쓸 수는 없다. 다른 주제로 다른 방식의 글쓰기로 한 사람이 마치 복수의 사람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아무도 아닌 것처럼 글을 쓰는건 불가능한데, 아무도 아닌 것은 즉 아무것도 없는 것이고 무라는 원인에서 유라는 결과가 나올 수는 없다(그런건 신이나 하는 것).

긴 시간동안 숨겨진 글쓰기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에는 일정부분 타협해서 무대에선 배우처럼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위주로 글을 쓰고자 한다. 외출할 때 화장하는 것처럼, 내 글은 앞으로 꾸며진 느낌을 가질 것이고 그 글들로 내 모습을 그리면 기존에 나를 알고 있는 누군가들이 알고 있던 모습과는 조금 혹은 많이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전에 카메라 파인더로 보는 시선에 대해 글을 썼던적이 있는데 파인더(사진), 글, 그림 등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언어'로 대화하듯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내가 포스팅하는 이미지와 텍스트들고 나와 대화하고 그 대화로 나에 대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여태 진실과 솔직함을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를 들내고 읽는 방법에는 갭이 있을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그 갭을 충분히 활용해보고자 한다.
나는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도 아니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야하는 연예인도 아니고 예술가니까.
Trackback Comment

흥미를 잃다


x700, Rokkor 35mm F1.8, Max400


여러가지 호기심도 많고 관심도 많던 나였는데, 최근 그 흥미를 쉽게 잃어가고 있다. 물론 휴가동안 집에서 이런저런 관심사들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조금 안심은 되지만 정보의 수집이 제한적일 수 밖인 공간에서 내 흥미를 충족하기는 어렵고 때문에 흥미를 서서히 잃어가며 그 범위나 범주를 축소하며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경향이 자연스럽게 연출되고 있다.

시사에 대한 관심이 연예인과 유행하는 가요들에 대한 관심으로 옮아가고 있고 그외 기술적인 여러 관심은 그저 제한적인 공간에서 허락하는 범위내의 탐구로.. 물론 예술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지만 마음껏 빠져들기 힘든 환경이라 한가지를 꾸준히 읽어내거나 하기 쉽지 않다. 그저 근근히 흐름을 이어가고 있을 뿐.

어떤 방향에서 바라봐도 이 생활은 도움이 되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괜찮아, 도움이 될꺼야'라고 자위해도 한번 잃고나니 깨진 독마냥 계속해서 잃는 듯한 느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단순히 책과 그림으로 위로하기는 힘들다.
글쎄.. 확실히 보는 것이 없으니 의도하지 않아도 아방가르드적인 흡사 은둔중인 수행자처럼 건드리고 싶은 여러가지 일들에서 멀찌감치 바라보는 입장, 심지어 어떤 일이 생기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는 입장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글줄을 읊어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그래.
적어도 현실을 파악하고 현장감을 잃지 않는 노력의 하나라 생각하자.
그래...
Trackback Comment 4

의문_080116

작품과 관객이 상품과 소비자의 관계를 형성하게 될때 문화자본적 성격은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해외의 상황은 모르겠지만(나가봐야 알지) 국내의 상황을 보면 다분히 '작품=상품'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는 듯 하다. 나 역시 예술작품을 광고매체로 놓고 작업할 생각까지 해보았으니까..

문화자본은 경제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것인가?
이것은 체제(신자유주의)의 문제인걸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흐름일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면 우리네 예술 교육은 문화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상품으로서의 예술을 가르쳐야 하는 걸까?

코드를 잘못 짚고 있는 것일까... 지금 바로 현재를 파악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듯하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조금이나마 정확한 파악이 가능하겠지...
Trackback Comment

코멘트

가령 성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책에 있는 예입니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언듯 보기에 이 말은 시간에 대한 어떤 정의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가져볼 수도 있겠지요. "어떤 정의도 그저 우리를 정의되지 않는 다른 용어들로 이끌 뿐인데, 굳이 정의를 내려 무었하겠는가?" 그리고 "의자"의 정의가 없다고 당혹스러워하지 않았는데 왜 유독 시간에 관해서만은 정의가 없다고 당혹스러워하는가? 왜 우리는 정의를 갖지 않은 모든 경우에 당혹스러워하지 않는가? 정의는 종종 한 단어의 문법을 분명하게 해줍니다(여기서 문법이란 해당 단어의 사용방법이라고 설명해두면 쉽겠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시간"이란 단어의 문법입니다. 단지 우리는 이 당혹감을, 다소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물음은 산뜻하지 않은 기분(예컨데 뒤를 닦지 않은..;;;;), 정신적 불편함을 표현하는 말이고, 어린 아이들이 자주 묻는 "왜?"라는 물음과 유사한 것입니다. 어린라이들의 이 물음도 정신적 불편함의 표현일 뿐, 딱히 이유나 원인을 묻는 것은 아닙니다(아인리히 헤르츠, <역학의 원리>, 1894). "시간"이라는 단어의 문법과 관련한 당혹감은 바로 그 문법 속에 존재하는 외견상의 모순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에서 생겨납니다.

다시 시간으로 다른 예를 들어봅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논증했습니다.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과거는 지나가버려 측정할 수 없고, 미래는 오지 않은 까닭에 특정할 수 없다. 그리고 현재는 외현이 없기에 측정할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앞서 설명했던 문법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측정하다"라는 단어인데요. 이 단어는 한가지 문법만을 지니고 있는게 아닙니다. 여기에서는 공간적 사용법과 시간적 사용법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설명해본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에 대해 길이를 측정하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시간을 하나의 띠로 보고 현재게 띠의 일부분이라고 여긴것입니다. 따라서 그 띠위의 두개의 표지사이의 거리를 재는 것을 혼동한 것이지요. 이는 언어 한에 있는 두 개의 유사한 구조(시간의 측정과 거리의 측정) 사이의 유비가 우리에게 만들어내는 현혹때문에 곤란한 문제가 됩니다.

다시 또 예를 들어봅시다. 소크라테스의 질문입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여기서는 더 분명합니다. 여기에서는 정확한 정의의 예를 드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해, 이것과의 유비 속에서 "지식"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찾아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일단 문제가 제기되면, 마치 "지식"이라는 단어의 일상적 사용법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는듯 합니다(뒤에 설명하겠지만, 일상언어와 이상언어사이의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그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모르는 긋하고, 따라서 그 단어를 사용할 권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때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라는 단어에 단 하나의 정확한 사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용법들을 몇 가지 머리에 떠올릴 수 있는바, 그것들은 그 단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방식과 다소간 일치할 것이다."

철학적으로 혼란에 빠진 사람은 한 단어가 쓰이는 방식에서 하나의 법칙을 보고, 그 법칙을 수미일관하게 적용하려고 애쓰다가 역설적인 결과로 이끌게 됩니다. 철학에서 원하는 언어는 '이상언어'입니다. 철학적으로 혼란이 없는 어떤 완전한 언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언어들은 철학에서 요구하는 것과 같이 어떤 한가지의 절대적인 법칙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일상언어'입니다. 철학에서는 이 둘의 관계를 대립의 관계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이 역시 혼동이며 오류입니다 . -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왜냐면 마치 우리가 일상언어를 개선하여 이상언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상언어에 문제가 있는게 아닙니다. 우리가 '이상언어들'을 구성한다면, 그것은 그것으로 일상언어를 대체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일반 단어의 정확한 사용법을 파악했다고 생각함으로써 자기 머릿속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니위니 어떤 글에 달았던 코멘트 중에서 발췌.
거의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적거나 아주 약간 풀이한 정도. 줄이기에는 너무나 적절한 분량이라고 할까...
Trackback Comment

A Vision of Students Today



This video was created by myself and the 200 students enrolled in ANTH 200: Introduction to Cultural Anthropology at Kansas State University, Spring 2007. It began as a brainstorming exercise, thinking about how students learn, what they need to learn for their future, and how our current educational system fits in. We created a Google Document to facilitate the brainstorming exercise, which began with the following instructions:

“… the basic idea is to create a 3 minute video highlighting the most important characteristics of students today - how they learn, what they need to learn, their goals, hopes, dreams, what their lives will be like, and what kinds of changes they will experience in their lifetime. We already know some things from previous research (and if you know of any interesting statistics, please list them along with the source). Others we will need to find out by doing a class survey. Please add whatever you want to know or present.”

Over the course of the next week, 367 edits were made to the document. Students wrote the script, and made suggestions for survey questions to ask the entire class. The survey was administered the following week.

I then took all of the information from the survey and the Google Document and organized it into the final script portrayed in the video which was all filmed in one 75 minute class period.

The introduction was filmed by myself a month later. It is inspired by Marshall McLuhan’s ideas as they apply to education, especially as they have been used by Neil Postman and Charles Weingartner in Teaching as a Subversive Activity.

How we gathered the numbers:

133 out of 200 students responded to the survey which yielded the results. Further explanation of the data is posted below:

“My average class size is 115.”
Survey: What is your average class size? Average: 115.0602

“18% of my teachers know my name.”
Survey: What percentage of teachers you have had in college would be able to recognize you and call you by name? Average: 18.2

I complete 49% of the readings assigned to me.
Survey: Not including this class, what percentage of assigned readings do you complete? Average: 48.73

Only 26% … relative to my life
Survey: Not including this class, what percentage of assigned readings do you find relevant to your life? Average: 25.95

“I will read 8 books this year.”
Survey: How many books have you read this year? Average 8.03 (ranging from 0-200)
We discovered later that there was some disagreement about whether this question referred to a semester, the past year, or the year starting as of January 1st (this survey took place in April – roughly equal to one semester). To make the ratio to web page and Facebook reading more accurate we assumed this statistic to relate to one semester rather than one calendar year.

“2300 web pages”
Survey: On average, how many web pages do you read each day? Average 21.51
(We then multiplied this by 105 – roughly the number of days in a semester – and rounded to 2300.)

“and 1281 facebook profiles”
Survey: “On average, how many Facebook profiles do you view each day?” Average 12.2 (multiplied by 105 = 1281)

“I will write 42 pages for class this semester.”
Survey: “On average, how many pages do you write for your classes each semester?
Average: 41.96

“And over 500 pages of email”
Survey: On average, how many pages of e-mails will you write in a single day?
Average: 4.96 (*105 days/semester = over 500)

http://mediatedcultures.net/ksudigg/?p=119


특별히 코멘트를 달 필요가 있을까 싶다.
여기저기서 백날 떠들어봐야 1g의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

이 글역시나.. '길어서 패스', '영어라서 패스'
그러면서 베스트 코멘트 들은 챙겨서 읽는듯... 그저 답답할 다름이다...
Trackback Comment

memo 07.10.02

일상언어가 이상언어와 상관없이 그대로 완벽하다면 그대로 현실의 사회로 옮겨올 수 있을까?
현재의 사회는 이상적 사회가 되지 못한다고 해서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완전하다고?
일상언어는 개선할 수 있는 것 처럼 보이는 걸까 아니면 개선할 수 있는 걸까?
사회는 분명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 문제는 균형면에서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걸로 봐야할까?
언어와 사회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언어와 그가든 예들을 넓게 적용시켜보지 못한 것이 이런 문제때문이었을까?
이상언어를 완전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일상언어에는 정말 문제가 없는가?
이상사회를 완전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실제사회에는 정말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이상은 거머쥘 수 없는 것인가?
Trackback Comment

평가?

처음으로 "직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의 작업들을 봤다. 아마추어는 다소 낮추는 듯한 느낌이 강하므로.. 서로들 다른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조금더 곤란했던 것은.. 어떤 말을 꺼내기에 그 입장차가 많이 크다는 것. 더불러 미디어를 다루고 접근하는 방향도 달라서 선듯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단연 내가 다루고자하고 주제로 두고자 하는 것들은 "예술"영역의 현안들이다. 그리고 당연히 "모더니즘의 실패"로 인해 이 주제들은 '대중적인'것과는 멀어질 수 밖에 없다. 내 작업이야 그런 괴리를 줄여보고자 어쩌면 극단적인(억지로 끌어들이는 혹은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데 여하튼. 주제들, 다루고자 했던 것들을 들으면 포스트 모던 이전의 High Art(Pual J. Dimaggio의 분류에 따라)의 주제들을 지향하는 경향이 짙다. 다르게 말하면 아직까지 다분히 높은 시선으로 "우러러" 본다는 것. 새로운 계급형성일까, 계급붕괴에의 저항일까.

역시 개인전이 아닌한, 전시에의 아쉬움은 여전히 남겠다. 여전히 좋은 기회로 특히나 내 입장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게 되겠지만. 머리 아프다. 전략을 잘짜야. 심각한 실패는 피할 수 있겠지. 일단 작업물들과 전시장 평면도등을 가지고 뛰어다녀야겠다. 경험이 전무한 현재로는 다수의 조언들을 요청하는 수 밖에.. 아무런 정보도 말도 없을때는 손을 댈 수가 없었지만 구체적이진 않아도 몇가지 정보들을 통해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 설명할 만한게 없구나. 단지 하나의 문제에 집착했을 뿐인데.. 경계의 문제와 거리. 지금은 이것조차 어디서 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난감하지만.. 매체도 정해서 했다기 보단 습작에 가깝다. 덕분에 내 작업치고는 군더더기도 많은 편이고.. 꼬집을 만한 것도 많다. 속 시원한 작업을 했다면.. 아마 미술사를 다시 쓰고 있었겠지. 욕심만 넘쳐서인지 아쉬움만 늘어간다. 일단 큰 문제는 내가 경계(혹은 경계를 구분하는 행위)에 대해서 당시와 다른 관점을 띄고 있는 것이고 다른 문제 하나는 매체의 선택에서 다분히 습작성향이 강하다는 점. 현재 다른 매체로의 작업을 준비하고 있으나.. 난감한 면이 하나둘이 아니다. 텍스트, 그리고 스크랩의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학교에서 제한해준 '인물'이라는 소재도 나름대로 결정에 도움을 주긴 했다. 아니 이 이야기를 하자는게 아니고..

두개의 이미지를 엮는데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왜 두개씩인가? 한가지 이유는 두개 이상이 될 경우 이야기가 자칫 길어질 위험을 차단하려고 했고, 앞과 뒤의 관계를 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인데 후자의 경우 다분히 후회스럽다. 스스로 제목에다가 번호를 붙였으니까. 그리고 좌우 혹은 상하 관계역시 그 영향을 미치겠지. 이상적이라면 같은 이미지 사이에 하나를 끼워 넣는 방식이거나 와이어등으로 회전시키는 정도. 후자의 경우에는 움직임이 주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 위험하고 전자의 경우 반복되는 이미지가 더 두드러질 위험이 있다. 결국 한번에 두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두 이미지로 절대적인 경계를 부술 수는 없다. Ending의 느낌이 강하게 드는 후반부 컷들은 다소 에러. 아직도 후회하는 부분들중 하나다. 너무 직설적이기도 했고.. 다른게 보면 파악이 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와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이 강하다.

* 내일 돌아다닐 곳이 많은데 비가 많이 온다.... 이런..+

아직까지 모르겠는 부분들이라면.. '느낌'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지.. 나야 이미 느낌만으로 어쩐다고 보기에 작업에서 묻어나오는 계산적인 부분들과 다분한 편집증적 성향을 지울 수 없다. 이건.. 누구한테 가서 물어봐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 조언을 구하거나 답을 얻으려고 해야 할까.. 아..

다른 사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방법을 강구해보고 있을까? 표현하면 전부가 아닌데.. 왜들 표현 생각할까.. 표현이 과연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완벽한 스킬로 뱉어낸다면 예술의 화신이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불가능하니까.. 우리는 뱉은 것이 도착하는 지점까지 생각해야하는게 당연하지 않은가... 걸어버리고 무책임하게 등을 돌려버리기보다, 걸고나서 반응에 아쉬움을 키우며 다음번을 길게는 다음 세대에 대한 가능성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내 꿈도 많이 작아졌다) 그게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가 아닐까.. 다른 방향으로 갈 사람에게 무어라 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계속 해나갈 사람이라면 끝없이 고민에 빠져야 겠지. 변화가 없는 작업을 하려거든.. 때려치고 다른걸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단순히 더 많은 양, 혹은 더 좋은 질의 컨텐츠 제공이 아니라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컨텐츠를 구분하거나 좋은 컨텐츠를 이끌어내는 계몽적인 입장말고... 지금 생각으로는 기존의 컨텐츠의 위치를 전혀 엉뚱하게 스위치, 즉 전환해 버리는 것도 새로운 역할일 듯 한데.. 수단과 방법 방향에 완전히 부재중이라는 것은 이 역할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다른 방법이 최근 많이 시도되는 듯한 방법인데 컨텐츠를 심고 키우는 것이나 제공하고 가공물이나 2차 잉여물을 뱉어내게 하는 방법이다. 둘 모두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모양.. 완전히 새롭게 3단계 유통과정을 1-2와 2-3으로 나눈 것처럼 새로운 방법이 필요한데..

그래, 배고프니까.. 오늘 고민은 여기서 마무리. 더 짜내면 이것저것 나올 듯 하긴 한데, 나중에 정리 해야 할 것들만 잔뜩 늘어나니까..

참, 그리고 앞으로는 운용자금의 범위를 벗어나는 비싼 작업들도 구체적으로 정리해 두고 실험도 해두자. 이 부분을 그냥 넘어갔더니 아이디어나 메모를 덧붙일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

그리고, 최근 작업들이 많은 화집이나 잡지들도 좀 사두자. 당췌 집에 있는 화집들이 왜 죄다 20세기 미술이냐고.. 21세기 된지도 벌서 8년이 다되어가는데.. 구식 세대도 아니고.

또, 책 좀 꼬박꼬박 읽자. 나 왜이렇게 게을러졌니... 읽었던 것도 다 까먹고... 조급해 하지 않아도 되니까.. 여유가지고 좀 읽자. 그 사람들은 그 책 쓰느라고 많은 세월 보냈는데 순식간에 못 읽었다고 급해할 필요 없잖아..

아, 학교 작업 대책도 세워야 한다. 무슨 작업이 이렇게 많이 밀렸는지.. 또 뭘 이렇게 많이 해야하는지.. 대충 해버리고 던져버리는 작업들.. 정말 싫다. 좀 깊이 판 작업 좀 해보자고.. 테마는 또 죄다 달라요.. 어휴..
Trackback Comment

혼란스러움

피폐해져간다.
의지는 약해지고 있고 마치 내가 붕괴하는듯 절망감이 몰려온다.
자꾸만 반복하는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나는 어떠한 대답도 할 수 없다.
마치 흐르는 시간에 나 혼자만 머물러 있는 듯 흐르는 강에 혼자 반대로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상은 높고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바탕은 전혀 되어있지를 않다.
하나씩 홀로 준비하기에는 그 압박감이 너무나도 크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얼 해야 하는가?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작업. 작업을 하자.


머릿속의 것들을 꺼내어서 정리해 보자.
내딛기만 하려 하지 말고 일단 서서 내 주변을 정리하고 나를 가다듬자.
여기서 섯불리 걸으려다간 넘어져 버릴 것이다.


일단 일단은.
그래 그렇게.



역시 혼자서 앓는것 보다는 털어 놓는게 좋구나.
자주 찾아가야 겠다.
Trackback Comment 6

로스트로포비치 타계.

27일 로스트로포비치 사망.
그의 연주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아쉬운일. 나이가 많이 들긴했지만... 미술계사람이라 그런지 생존해 있는 거장과 죽은 거장에 대한 느낌은 많이 다르다. 안타깝기 그지 없다...

첨부파일 삭제

곡은 'Shostakovich'의 'Cello Concerto in E flat major No. 1 op. 107'중에 1악장 'Allegretto' 의 'Rostropovich' 1965년 라이브연주 레코딩 음반이다.(저작권 유효기간은 지남) 38세의 젊었던 그의 연주를 들으며 오늘밤은 그에게 나의 눈물을 맡긴다.
Trackback Comment

different point of View / About Genius

다른 관점은 아주 중요하다. 개인이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것에는 한계가 있다. 출신배경, 생활, 직업 등등의 영향으로 한 개인이 생각하는 줄기는 생각보다 많이 좁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꺼낼때 브레인 스토밍을 하게 되고 활발한 의견교환과 대화를 통해 다른사람의 관점을 사유하려고 한다.

내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단순히 나와 다른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들만이 아닌, 같은 과에서도 다양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다. 과 내에서는 아무래도 어느정도 공감하거나 비슷한 경험들이 많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시각까지 접하긴 힘들지만 대신 적응하기 쉽고 쉽게 이해할만한 관점들이다. 다른 일을 하고 다른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아주 새롭다. 별 소득 없는 무관심한 생각들도 있지만,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아주 새로운 의견을 주기도 하고 정말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을만한 뿌리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자신과 다른 그룹으로 분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생각의 베이스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깊은 대화가 아닌, 일상의 대화에서도 의견들이 새롭다는 걸 많이 느낄 수 있다. 간혹 단순한 대화도 정리해보다 보면 흥미로운 대화들이 많다.

내가 한마디를 했을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는 여러 사람들이 있는데, 생각의 깊이가 일정이상 되는 사람과 대화를 하면 지식의 넓이에 상관없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생각이 깊으면 스스로도 여러가지 보완과 수정을 하게 되는데 때문에 내가 듣게 되는 의견은 구체적이고 밀도있는 생각을 듣게된다. 얕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나 생각을 이야기 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들과는 좀처럼 대화에서 이득을 취하기가 힘들다. 전자의 경우 너무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이 말하는 자신의 생각의 대부분이 이미 다른 여러 사람들을 통해 접해서 알고 있거나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해서 쉽게 고려할만한 관점일 경우가 많다. 후자의 경우에는 당연하지만 발신은 있지만 수신이 없는 경우. 청자의 경우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움이 되겠지만 화자의 경우엔 독백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다. 또한 청자 역시 궁즘증이나 의아한 면에 대해서 화자가 따로 자발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 이상 그 관점의 배경이나 근거는 수수께끼로 남게 되어 다른 관점을 왜곡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하다. 물론, 그 이전에 청자가 상대의 관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자의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다.

아인슈타인의 명언중에 '천재는 1%재능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이 있는데, 오늘날의 상황은 많이 다르다. 특히 비과학의 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내가보기에 노력은 아무리 가치를 높게 따져서 퍼센테이지를 매긴다고 해도 30%를 넘지 못한다. 말 그대로 무식하게 노력하는 것보다는 요령있게 적당히 노력하는 '효율성'이 필요하다. 100시간을 노력해서 똑같은 작업을 100개 하는 것과 100시간을 들여 전혀 다른 작업 10개를 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내가 학교 커리큘럼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것이 생각없이 작업만 하는 것인데, 많은 생각을 할 시간을 잔인하게 빼앗아가고 '노동'의 노력만을 요하기 때문이다. 미술 비전공인들도 시간만 주어지면 얼마든지 '잘'그릴 수 있다. 흥이다. 오늘날 우리네 천재는 30%의 노력과 60%의 생각, 고찰과 10%의 재능으로 이루어 져야 한다. 더이상 천재는 하늘에서 내림을 받은 소위 '삘'받은 인간도 아니고, 엄청난 노력으로 양적으로 많은 업적을 이루어 내는 인간도 아니다. 냉정하게 사고하고 프로세싱해서 아주 애매모호한 경계선상에 위치할 수 있어야 한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똑똑했으면 좋겠다.
Trackback Comment

요즘 작업

어느정도 수준을 갖추면서도 어렵지 않고 매체가 가지는 여러가지 한계를 극볼해 낼 수 있는 작업을 하고자 하는데... 당연한 것이지만 쉽지 않다. 여러 형태의 미술을 해보고 여러가지 형태의 매체를 접해보고자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고 제약도 많다. 확실히 개학하고 나니까 더더욱 내 작업을 따로 하기가 어렵다. 요즘 머리가 먹통이 될때는 음악을 찾아들으며 사진들을 쳐다보곤 하는데...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은 꽤나 많지만... 정작 호감가고 쓸만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별로 없어서 무척이나 아쉽다. 다른 고민들 덕분에 걱정이 생기기도 하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다양하고 그만큼 리스크도, 내 아쉬움도 다양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지난 금요일에는 플레너를 잃어버렸는데, 오늘 다시 가보고 둘러보았지만 찾지 못해서 기분도, 짧은 몇일간의 생활도 다소간 엉망이다. 젠장.

학교와 상관없이 하는 내 작업은 지금현재, 2월 중순부터 시작한 먼지모으기 작업과 사진 연작들.
먼지 모으기는 벌써 1달이 넘었다. 약 2달정도가 되는 시점에 거두어 보고 이번주 안에 다른 공간에 설치하는 것도 시도해 보려고 한다.
사진 연작은 일전에 포스팅했던 'Growing', '생의 마지막에서' 가 있고, 'Visitor'를 촬영하려고 준비중에 있다.
공공미술역시 진행하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과 정확하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의욕만 있고 계획을 읽지도, 신경쓰지도 않아서 이끌고 진행하기가 어렵다. 이번주 주말에 미팅을 하고 얄짤없이 다 때버리고 진행할 계획이다. 자꾸만 기다려주면 이전의 사례들에 또 하나의 실패 사례를 추가하는 꼴밖에 되지 않겠다. 작더라도 야무지게 해야 뭔가 될듯 하다. 어차피 내 프로젝트가 규모가 좀 있는 편이라서 이 것만으로도 어떻게 될 듯 하다.

요 몇일간 계획에서 어긋나는 일들도 있고 예상밖의 일들도 있곤 해서 다분히 페이스가 다운되었다. 작년처럼 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서 아쉽거나 하기보다는 내가 주변상황에 너무나도 쉽게 휘둘려버리는 듯한 모습이 안타깝고 한심해서. 무언가 뒷받침이 되면 어떻게 해볼 수 있겠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난 개념이 없어서일까... 기본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못하는지... 이렇게 해서야 여러가지 요소들과 변수들을 고려한 작업을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든다.

좋은 작업을 하기 위해서. 일단 이런저런 작업들을 해보고 있다. 최근들어 머리가 뜨거워지고 있는지 냉정했던 시각이 조금씩 감정적으로 변해가는 듯 하다. 편견없고 일단 받아들이는 시선은 돌아온듯해서 꽤나 기쁘지만, 판단력이 흐려지면 좋아질게 하나도 없다. 너무 이성적으로 딱딱해 지지 않으려고 반대편을 생각해 보려고 한건데... 과한 것일지도. 하... 일단은 최근 힘이 든다고만 해두자. 쉬운일이 없구나....
1 Trackback Comment

주석.

파노프스키의 이데아 / 어윈 파노프스키 저, 마순자 옮김 / 예경, 2005년판

 - 3장 5번째
필론에 따르면 하느님이 이데아들을 창조했다. 왜냐하면 그는 아름다운 원형들 없이는 어던 아름다운 것도 창조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De opifivio mindi, IV); 그러나 이데아들은 그분의 마음에 내재해 있으며, 그분의 신적 의도를 돕기 위해 그것들은 '비육체적 힘들asõimatoi dynameis'의 기능을 부여받았다. Zeller, Philodophie der Griechen (4th printing), III:2, 409를 참조하라; 주 25에 있는, 세네카의 65번째 서한에서 인용: "모든 사물의 본을 신이 자신 속에 가지고 있다."

 - 3장 13번째
de Wulf, in Revne néoscolasticque, II와 III를 참조하라. 토마스 아퀴나스는 풀크룸pulchrum(아름다운 것)과 보눔bonum(좋은 것)의 관계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의했다: "그것들(풀크룸과 보눔)은 실로 및에 놓여 있는 것에 있어서는 (우리 같으면 '존재론적으로 고찰하면'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탁월함에, 즉 형상에 기반을 두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해 좋은 것이 아름다운 것으로 칭송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근거에 있어서는 (우리 같으면 '방법론적으로 고찰하면' 이라고 말할 것이다) 서로 다르다. 좋은 것은 특별히 욕구를 반영하니까. 사실 모든 것들이 바라는 것은 좋은 것이며,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은 목적finis의 근거ratio를 같는다.…… 반명에 아름다운 것은 인지적 영향력을 반영한다. 왜냐하면 보았을 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아름답다고 이야기되니까." (Summa Thelogiae, I.5.4; Fretté-Maré, I, 38).

나중에 업데이트.
Trackback Comment

무슨생각?

Rollei35SE, Sonnar 40mm 1:2.8 HFT, Portra 160VC, v700 with SilverFast

요즘 대학생들은 무슨 고민을 할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같은 입장이지만 글쎄.. 누구나 고민하는게 같다곤 할 수 없으니 거기다 각각 자신의 상황에 맞는 고민들을 할텐데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어떤 것들을 듣고 어떤 것들을 말하며 어떤 행동들을 하고 어떤 글들을 읽는지...

가끔 세상의 소리에 귀를 막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귀를 열어두는 부분이 있을테니. 궁금하다.

보편적인 관심사는 있겠지. 특정나이 특정 그룹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관심사와 흥미 과연뭘까? 어디 자료 없나...
Trackback Comment

잡생각

결국 그게 문제였다. '문화 의식' 이 나라는 '의식'이 없다. 질서없이 정리정돈없이 마구 될대로 되란식으로 쌓여져 온 것이 우리나라의 '문화'다. 이것을 관리하는 집단 혹은 사람은 도무지 정도가 없다. 이런 것은 비단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많은 분야로 뻗어나간다.

문제는 '권력'의 관계.

학생들의 두발단속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통제다. 가장 단순하고 기본적인 자유를 억압함으로 우월함과 권위를 확보하고 굴복을 받아내는 것이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로어'로 상대방을 기죽이게 만드는 것이랄까... 일단 한번 주눅이 든 상대는 컨트롤하기 쉽다는 것은 굳이 어려운 심리학을 참고하지 않아도 인간은 오랜경험으로 쌓여온 직감으로 알고 있다. 맹수가 포효함으로 공포를 심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화는 조금 다르다. 두발단속이 직접적인 간섭의 자유 억압이라면 문화는 간접적 방식으로 위화감 없이 컨트롤 할 수 있도록 수신기를 심어놓는 역할을 한다. 이를테면 직접 돈을 가져다 바친다는 느낌이 강한 직접세(수도, 전기, 재산세 같은)가 두발단속이라면 문화를 통한 통제는 물건의 가격에 은근슬쩍 포함되어 내는지조차 느낌도 없는 간접세(부가가치세)라고 할 수 있다.

이쯤되면 우리나라 문화가 왜 그렇게 엉망인지 파악하기 쉽다. 우리나라는 독립한지 오래되지 않은 나라다. 근현대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일본의 우리나라 통치가 어떻게 변해갔는지는 알것이다. 직접적인 억압은 심한 반발을 불러온다. 문화, 교육의 힘이란 강대하다. 이후부터 이 수단은 강력한 구속구로 작용해왔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그래왔고 지금도 그러한것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 일정범위(대체적으로 도덕적 허용범위)를 벗어나게 되면 '새로운 것'이 아닌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본론을 꺼내보자. 우리나라 문화가 왜 항상 늦고 뒤쳐지는가 하면 바로 위와같은 현상이다. 다른 것을 새로운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배제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그 시선.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문화 생산자에게 그런 취급을 받으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생산자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세력'은 당연히 보수적일 수 밖에 없으며 이들의 영향은 수용자에게도 미치게 된다. 작은 불씨를 무자비하게 꺼뜨리는 곳에서 큰 발화가 일어날리 없다. 그러고는 안정적으로 외부에서 철저히 검증받은 것들을 가져온다. 그리고는 그때서야 그에 맞는 꺼뜨린 불씨를 찾아보기도 하고 새로운 흐름을 준비하는 것인데 당연히 우리의 것이 아니다보니 기준도 우리가 아니고 고로 그 자체에 특색이란 전혀 없는 것이다. 똑같이 되풀이될 뿐이다. 기준에 들어맞지 않는 것은 배제될뿐, 우리의 문화를 지켜야 한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어설픈 자비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던 불씨를 꺼버리고 밖에서 횃불을 들여왔으면서 어디에 우리의 것이 있단 말인가? 이런 곳에서는 '우리의 것'도 '새로운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여기에 대한 책임은 생산자에게만 있지 않다. 수용자 역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갖추어주어야 한다. 단순히 생산자의 공급에 매달려있는 수동적이고 약자의 입장에 머무르려하지말고 생산자의 태도를 비판할줄 알고 생산물을 날카롭게 평가할 줄 알며 흐름을 예측까지는 필요없지만 읽어낼줄은 알아야 한다. 무리한 요구일지는 모르나 이러한 수용자의 역할이 부족해지면 정치적 무관심과 같이. 수용자의 의도와 요구와 생각은 배제된 문화흐름이 발생한다. 현 시대는 특히나 사용자(수용자)중심의 흐림이 주도적이다.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You'를 선정할 만큼, 사용자가 만드는 컨텐츠는 폭이 넓고 방대하다. 수용자는 어딘가에 구애되지 아니하고 마음껏 기량을 펼쳐보이는 것이 옳고 그러해야 한다.

그렇 어떻게 그런 자세를 가질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저런 현상이 있는지 알 수 있고 타파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나는 몇마디 밖에 못하겠다. 일단은 통찰력을 기르는게 우선이다. 통찰력은 주의깊은 생각에서 어렵지 않게 나온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자. 그냥 넘겨버리지 말고 듣고 보면서 의문을 제기하자. 작은것 하나에도 꼬투리를 달고 '왜?'라고 묻자. 내가 느끼고 알고 있는 바로는 지식의 깊이에 관계없이 예리한 통찰력이면 놀랍게도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할 수 있더라. 그외에? 사실 어느정도의 지식수준을 요할 수 밖에 없다. 지식이라는게 단순히 '안다'라는 것 이외에도 여러가지 관점에서 생각할 기회를 많이 주게 된다. 여러 글을 읽고 배우면서 자연스래 그런 힘이 생기는 것이다.

지배하에서 틀을 벗어나는 생각을 가지긴 어렵다. 틀안에 있으며 틀을 유지하는건 쉽다. 그리고 안정적이다. 안정적이고 정착하고자 하는 사람의 성향은 이 틀을 쉽게 깨지 못하게 만든다. 그 중에 몇몇의 불합리함을 참지 못하는 이들이 들고 일어나는 거지... '의식'하고 있는 사람의 부재는 어느 입장에서나 아쉽다. 이런 '의식'하는 사람의 증가를 기대해보며 어줍잖은 글을 맺으려 한다...

* 꽤 긴텀을 두고 나누어 쓰다보니 연결이 매끄럽지도 않고 하여 좀 짧게 끝냄. 역시 글은 삘받아서 한방에 써야 제맛. 끊으니까 확실히 난감하다. -_-
Trackback Comment